● 음성문자인식 기법으로 환생한 1977년 비망메모 ..

● 음성 문자 인식 기법으로 환생한 1977년 비망록 메모 ​(강민구. 1977.12.31)​ ​ 1978년을 지내다가 서서 또 한해가 저문다. 1977년의 나에게는 너무나 기쁜 나이로 동시에 고생한 해이기도 하다.​ ​ 겸허한 마음으로 올해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각오로 1978년을 맞아 보자.​ ​ 먼저 1월에는 제가 서울대, 그 중에서도 가장 엄청난 사회 계열에 입학했다. 어느 정도 기뻤지만 고등학교 합격 때보다는 적었다.형의 실패 흔적을 깨끗이 내가 보상한 셈이다. ​ ​ 2월에는(고향 선산)집에 와서 내가 주도하고 고아 고아 국민 학교 제37회 동창회를 2월 19일 설 다음날 개최한 지 80명이 모여대성황 속에서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모교에 시계를 기증하고 페낭 투도 만들었다.최용판 담임선생님, 김기수 교장선생님도 모두 좋아했다. 내 힘으로 동창회를 열어보니 정말 조직 운영과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다.동창회 때는 황진권 박경자 유만종 유영희 등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특히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걸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친구들도 우리의 활동에 감동해서 많이 참여했던것 같다.또 경자의 친구는 회계를 맡아서 정말 수고했습니다. 3월 들어 입학식이 있고 대망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또 동시에 기숙사 생활이 시작됐다. 학교생활에 점점 익숙해져서 기숙사 친구같은 방 친구들과 술도 같이 마시게 되었다.조남희 곽병선 최부영 모두 좋은 친구들이다. ​ ​ 4월에 돌아서서 나를 정말 어머니보다 더 잘 지켜보고 주신 할머니가 극락 세계에 떠났다. 정말 슬펐다. 어린 시절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고, 특히 ‘신포린(辛)’자를 가슴에 새기며 생활하라는 말이 생각난다.나이는 늙었지만, 개화된 사상을 갖고 현대의 여성 못지않게 진보적이던 할머니!​ ​ 5월에는 뵤은용의 집합 훈련과 중간 고사 시험이 있었다. 10일 육군 종합 행정 학교에서 유격 훈련 ㆍ, 각개 전투 훈련 ㆍ PRIㆍ 사격 훈련 등 정말 힘들게 열심히 했다.그동안 나는 시간의 중요성, 나의 존재의 재파악.하면 된다(즉 정신통일이 최고의 무기)는 것도 느꼈다.또 군대 생활이 생각보다 하기 싫고 가능한 한 장교에게 가는 것도 함께 느꼈다.대학에 와서 처음 보는 중간고사는 병영 집합훈련으로 얻은 독감과 피로 때문에 그야말로 악전고투였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 6월에 와서는 학기말 고사 준비로 나날을 보내며 미팅 등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학기말 고사는 잘 봤지만 중간고사 때문에 학점은 예상보다 나오지 않았다.​ ​ 7,8월에 방학을 맞아 집으로 와서 농사를 도왔다.  어머니의 노고를 피부로 실감했고 육체노동도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수박을 쌓기도 하고 물을 뜨기도 했다. 또 울산의 언니 집을 찾았다. 8월 22일 2학기 개강이 있었다.​ ​ 9월 들어 1학기 성적&#51
012; 보완하기 위해서 공부에 전념했다.​ ​ 10월에 오고, 학도 호국단 문제와 사회학과 토론회에서 발단이 된 시위가 일어나고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고 10월 29일에 다시 정상 수업으로 되돌아왔다.이 휴교 기간 중 기숙사도 폐쇄됐고 나도 고향집으로 내려와 타박을 도왔다. 동력 탈곡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덕분에 감기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걸렸고 지금까지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있었지만 11월 초에서 중간 고사가 있다.나의 베스트(비록 아프지만)를 다했다. 결과도 기대됐다. 2학년 1학기 장학생의 신청 기준이 1학년 1학기 성적에 한정되어 저는 제외됐다.다소 기분이 우울해 있었다. 그러나 2학년 2학기에는 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 12월 역시 시위가 벌어졌다. 구속학생 석방을 조건으로 인문대 국사학과 학생들이 주도했고 그야말로 전 캠퍼스가 들끓을 정도로 크게 일어섰다.​ ​ 11월 11일 문교부 장관까지 와서 대통령은 “다시 한번 시위를 하면 학교에 무기한으로 폐교시키고 전 학년 낙제시키고 있다”라고 협박하기 때문에 경찰이 캠퍼스 내에 주둔하게 됐다.현실의 비참함을 절감하고 같은 방 친구들과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시며 현실과 삶에 대해 토론했다.왜 사람은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 존재의 위대함과 약함을 비교(우주와 인간, 모래알과 인간) 종교에 대한 토의~~수업은 강행되었다.​ ​ 12월이 되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민방위 등화관제 시간과 정전 시간을 이용하여 카드 놀이 등을 배웠다.​ ​ 14일에 기말 고사가 있어서 병이지만 그야말로 나의 최대의 노력을 경주했다.​ ​ 14,15일 이틀 간은 신경 안정제를 사용하고 꿈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다 16일에는 빵과 우유에서 잤다.잠이 안올때 이기는 방법을 배웠다. 누워서 힘든책을 읽는다. 지칠때까지 공부한다.술 자기 전에 빵이나 우유 등을 듬뿍 먹는다.​ ​ 12월 18일 집으로 내려왔고 지금까지 보내고 있다. 2월 14일 과의 할당이 있다.  법학과 경제학과 무역학과 3명의 중국에서 숙고한다.​ ​ 있다고를 선택하거나 사이에 1977년은 제가 비록 자주 아파서 정상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너의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노력하면 된다.  자신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내가 하지 않는 것이지 내가 정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탁구, 테니스, 공부 등을 통해 배웠다.​ ​ 1학기에는 고독과 불안의 쌓이고 그것을 이기려고 편지도 자주 했지만 2학기에 들어 이를 극복했다.​ ​ 인생은 유한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무한에의 의지를 갖고 1978년에는 저의 노력을 더 가중시키고 건강에도 유의하고 몸이, ㆍ 정신 건강에 힘쓰고 진정한 남자가 되도록 노력한다.하느님, 저에게 힘을 주시고 현재의 미미한 제 병을 고쳐 주시고 저에게 격려와 에너지를 주시기를.극락세계에 계신 할머니, 아버지, 할아버&
#51648;, 저를 도와주세요.​ ​ 1977년 12월 31일 ​의 강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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