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가수 김수철 .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가수 김수철.어느덧 환갑이 넘은 그가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데뷔한 지 4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음악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를 만나삶과 음악 인생, 그리고 못다 이룬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김수철이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 연주를 선보이자, 남자들로 가득한 촬영장에서 “와”라는 감탄사가 쏟아졌다. 김수철은 등장한 지 몇 분 만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엄청난 장악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옛날 모습 그대로다.​그리고 이어진 인터뷰. 김수철은 3시간여 동안 쉴 새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6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과거를 반추할 때는 개구쟁이 소년 같아 보였지만,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진지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확고했고, 자신이 지금 걷는 음악적 행보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9일부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3연전 동안 라팍 클래식시리즈 이벤트를 진행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가 일본프로야구(NPB) 지바 롯데 마린스를 할퀴었다. 최지만(29, 탬파베이 레이스)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 2차전 세 번째 타석에서도 볼넷으로 출루하며 3출루 경기를 펼쳤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박용택이 KBO리그 최초 2500안타에 이어 통산 최다 경기 출장 신기록 달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최지만(29, 탬파베이 레이스)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 2차전 세 번째 타석에서도 볼넷으로 출루하며 3출루 경기를 펼쳤다.

>

상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일하다 수상 소식을 접하고는 평론가 임진모 씨에게 전화해 “받아도 되는 거냐?”라고 물으니 “형, 그건 음악적으로 되게 의미 있는 상이야. 받아” 하더군요. 후배를 위해 더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방송가에 음악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출연을 안 하게 된 거지, 아예 활동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대중이 알 만한 걸 예로 들면, JTBC 타이틀 음악을 제가 작곡했습니다. 또 YTN 뉴스 타이틀 음악도 제가 만들었어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작곡가가 누군지 모르는 음악 가운데 제 곡이 은근히 많을 거예요. 영화, 드라마, 현대무용, 한국무용 분야의 음악 역시 그런 경우가 많고.​

준비한 건 많은데 보여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원래 이즈음 대공연을 준비 중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습니다. 사태가 진정되면 그 공연을 시작으로 다시 활동을 해볼까 합니다. 2002년 이후 앨범을 내지 않아 장르별로 발표할까 생각 중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아직 안 한 데쥐 40주년 기념 공연도 구상 중입니다.

김수철은 대학 시절인 1978년 록 그룹 ‘작은 거인’을 이끌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표곡 ‘일곱 색깔 무지개’를 작사, 작곡, 편곡했고 깡총깡총 무대를 휘젓는 특유의 액션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대학 시절 1년 선배 형이 지어줬습니다. “너희 4명이 큰 걸 발휘해라”라는 의미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잘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제가 키가 작다 보니 사람들은 키 작은 사람들이 하는 밴드라고 오해하기도 했어요. 저 빼고 다른 멤버는 다 키가 큽니다. 어쨌든 저와 밴드 이미지가 겹치면서 작은 거인이 제 별명처럼 굳어졌죠.​

제 키가 요즘 보기 드물어요. ‘희귀 동물’이죠. 세상 사람들이 나 빼곤 다 큰 것 같아요. 한 163cm 되려나? 이런 키 만나기 쉽지 않죠. 하하하.​

인기라고 하기에는 대중성이 없었습니다. 대학 축제에서 상을 받아 대학생 사이에 알려진 것뿐이에요. ​

스테이지 매너는 모르겠어요. 밴드라는 건 합이 잘 맞을 때가 있고 안 맞을 때가 있는데, 잘 맞을 때 제 표현이 좀 액티브하죠. 그게 사람들 눈에 띈 것일 뿐 일부러는 못 하죠. 전 뭐든 억지로 하는 걸 싫어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제일 좋죠. 방송에 잘 안 나가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꾸미는 걸 싫어하니까요. 애드리브나 무대 매너를 일부러 꾸며서 해본 적이 없습니다.​​

>

우리 때는 부모님이 음악가, 예술가 이런 걸 싫어했어요. 공연도 몰래 했죠. 그렇게 활동하다 어떤 멤버는 부모님한테 걸려 탈퇴하고, 누구는 이민 가고, 군대도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산된 겁니다. 마니아들은 해체 이유를 궁금해했죠. 근데 우리는 부모님한테 야단맞는 판국이라 그런 건 안중에 없었어요. 내가 먼저 살아야 했으니까요. 하하하.​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공부를 하는데 송골매 형한테 연락이 왔어요. ‘MBC 국제가요제’에 나가고 싶으니 곡을 좀 써달라고 찾아왔더군요. 거참, 당황스럽게. 근데 어떡해요, 해야지. 그래서 “아, 일단 나가 계세요” 하고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곡을 썼습니다. 국제가요제에 참가할 곡이니 편곡도 오케스트라로 스케일 있게 만들었죠.​

자주 그런 건 아닌데 그날, 하필 그때 딱 필이 온 겁니다. 그렇게 완성됐어요. 영감은 자주 오는 게 아니죠. 가끔 오는데, 바로 그때 그게 온 거였죠.​

그냥 우정으로 만들어준 거예요. 돈도 한 푼 안 받았죠. 즉흥적으로 쓴 곡이라 별 기대는 안 했지만, 곡이 히트했으니 밥 한 끼는 사줄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것도 하지 않더라고. 하하하. 농담이고, 형들이 잘된 게 좋은 거죠. 배철수 형과는 아직도 1년에 몇 번씩 만나 밥도 먹곤 합니다.

1983년 으로 복귀한 김수철의 ‘못다 핀 꽃 한 송이’ ‘별리’, ‘내일’ 등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듬해 가수왕을 차지했다.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등 2, 3집 수록곡도 잇달아 대박을 터뜨리면서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떠올랐다.​

>

‘작은 거인’ 시절 하드록을 했기 때문에 내 필모그래피에는 시끄러운 음악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곡만 모아 기념으로 갖고 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앨범을 냈고, 활동 없이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죠. 그런데 그 앨범이 대박이 난 거예요.​

상을 16개나 받았으니까요. 하여튼 당시 상이란 상은 모조리 받았습니다. 그래도 최고의 해라기보다는 ‘내 평생 제일 바빴던 해’라고 생각해요. 김수철 하면 떠올리는 노래가 모두 그때 나온 겁니다. 당시 부도 위기에 놓였던 레코드 회사가 제 앨범을 팔아 빚 갚고 20만 평짜리 공장까지 지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해는 다섯 번 정도 됩니다. 1984년 히트곡이 쏟아졌을 때,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야제 음악을 맡았을 때, 1989년 동요를 만들었을 때, 1993년 영화음악을 맡아 OST가 100만 장 넘게 팔렸을 때,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을 맡았을 때입니다.보람 있었던 일로는 ‘젊은 그대’ 만든 걸 꼽고 싶어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대를 뛰어넘어 부를 노래는 제 곡 중 그거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은 “온 가족을 버무려서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하던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죠. 평생의 보람으로 여길 정도로요.​

‘젊은 그대’는 3분 30초짜리 노래인데 정작 작곡은 3분밖에 안 걸렸어요. 처음 가사를 받는 순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싱어롱’으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도입부에 ‘국빡 국빡빡’ 리듬부터 나오게 해서 흥을 돋웠고요. ‘국빡 국빡빡’은 “야, 모이자”라는 의미예요. 그리고 베이스로 리듬을 이어가고 키보드의 ‘빰빰빰빰 빰빰빰빰빠’가 나오면서 흥은 더욱 고조되죠.​

작사를 먼저 하고, 가사 분위기에 맞춰 작곡하는 겁니다. 그게 정석이죠. ‘젊은 그대’도 작가 안양자 선생님이 가사를 주면서 작곡을 제안했고, 노랫말에 따라 곡을 떠올렸어요. 저는 아직도 모든 작업을 연필로 악보에 그리면서 합니다.​

>

당연하죠. 그게 저니까요. 하하하. 제가 뭐 연기할 줄 알겠습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한 거니까 저 자체죠. 안성기 형만 따라다니면 된다고 해서 “그래?” 하고는 역을 맡았는데, 주문이 많더라고요. 어떻게 멘트하는지 잘 모르는데 대사가 자꾸 늘더라고요. “아, 할 줄도 모르는데 왜 자꾸 넣냐”고 하니까 오히려 “왜 이것도 못 하냐”고 야단을 맞았죠. 그래서 ‘에라이, 막 하자!’ 해서 한 것이 병태입니다.​

‘작은 거인’ 해산 후 쉬고 있을 때 안성기 형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배창호 감독님이 함께 계셨어요. 배 감독님이 대뜸 “나랑 함께 영화 하시죠”라면서 출연해달라는 겁니다. 저는 분명 거절했는데 갑자기 소설가 최인호 형이 합류하면서 술을 한잔하게 됐어요. 그러고는 어느 순간 기억이 안 나더군요. 그런데 일주일 후 영화 촬영하러 왜 안 오냐고 연락이 오는 거예요. 아무래도 술에 취해서 출연을 승낙한 것 같아요.

최고 인기를 누리던 김수철은 1987년 을 내며 국악으로 전향한다. 하지만 앨범 판매 부진으로 빚더미에 올라 가요계로 다시 돌아온다.’정신차려’가 히트를 치면서 빚을 갚게 된 김수철은 다시 국악으로 돌아간다.​

국악 공부는 대학교 4학년 때 시작했습니다. 한창 활동을 할 때에도 국악 공부는 계속 했죠. 낮에는 가수 활동을 하고 밤에는 국악 공부에 매달리니 그 당시 아무도 나를 못 찾았습니다. 하하하. 해야겠다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하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한 겁니다.​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좋으면 하는 거죠. ‘잘 팔리겠다’, ‘안 되겠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내가 생각하는 앨범의 ‘낼래’, ‘안 낼래’가 달려 있는 판국에. 뻔히 안 될 걸 알면서도 내야죠.​

>

순수 자비로 을 냈는데 일주일 만에 폐품 처리한다고 하더라고요. 반품이 들어오니 빚까지 쌓였죠. 아니 기다려보지도 않고 일주일 안 팔린다고 바로 폐품 처리라니! 마음의 상처를 받았죠. 일주일 넘게 가더라고요. 막 울컥거렸어요.당시 빚만 1억원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넌 가요 내면 돈 버는데 왜 이상한 짓을 하느냐”고 야단쳤습니다. 그때 ‘대중음악이냐, 내 길을 가느냐’를 두고 고민했어요. 그런데 여태 내 길을 왔는데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대중적인 걸 합니까! 더 늦기 전에 꿈꿔오던 ‘원맨 밴드’를 해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정신차려’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최초이고, 세계에선 두 번째인가 그랬죠. 원맨 밴드는 작업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작사, 작곡, 편곡, 각 악기 연주, 믹싱 등을 혼자 하니까요. 당연히 회사에서는 시큰둥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 ‘정신차려’가 히트를 친 겁니다. ‘정신차려’로 빚을 다 갚고도 돈이 남았는데, “빚 다 갚았죠?” 하면서 그 돈으로 또 국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놈 또 미쳤네” 하더군요. 하하하.

1990년대 들어 김수철은 국악, 영화음악, 행사음악, 연주음악 등 하고 싶은 음악에몰두한다. 특히 1993년 대전 엑스포,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에서 활약하며세계에 우리 음악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

공부가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물론 재미도 있었고요. 예전에는 음악성이 출중해야 영화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컷마다 박자 계산을 해야 장면 변화를 맞추니까요. 그래서 음악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영화가 어떤 장르인지, 주인공의 연령대는 어떤지, 영화 타깃층은 누구인지 등에 따라 음악도 국악, 클래식, 뉴에이지, 발라드, 랩 등으로 달라집니다. 그러니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알아야 하죠. 음악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언제 어떤 영화가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1980년 영화 클럽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청소년세계영화제’에 출품할 영화를 만들었어요. 제목은 이었고, 한국 젊은이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죠. 당연히 국악이 들어가야 하는데, 찾아보니 쓸 만한 국악이 몇 개 없었습니다. 대안으로 제가 아는 몇 곡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기타 연주해 넣은 것이 기타산조의 시작입니다. 이후 우리 것을 좀 알아야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국악 공부였습니다.그 뒤 1986년 부산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1993년 대전 엑스포,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2년 한일 월드컵, 2002년 제57주년 기념 UN의 날 특별 공연 등에서 연주했습니다. 꾸준히 공연으로 완성도를 갈고닦아 2002년 10월에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1980년에 시작했으니 22년을 매달린 셈이죠.​

처음에 기타산조를 할 때는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완성하기 어렵더라고요. 애드리브 치고,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다져나가야 했죠.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기타산조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빠르게 다가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확신이 있어요. 이건 하기만 하면 됩니다!​

>

좋아하는 것만 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인기나 출세, 돈에 목적을 두지 않았거든요. 터닝포인트라는 건 인기가 있기 때문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겁니다. 인기가 없으면 터닝포인트고 뭐고 아무도 안 봐줘요. 하지만 인기라는 건 올라가면 내려오게 되어 있죠. 마이클 잭슨이라도 안 돼요.그렇다면 공부를 해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중은 굉장히 무섭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온 것을 대중이 인정하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음악 일이 들어오는 겁니다. 인기에 연연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Den 140호 에디터 이영민 포토그래퍼 김동오

>

.
손수현 분노, 낙태죄 유지? 놀리나, 낙태죄 폐지해 배우 손수현이 현행 낙태죄 유지에 분노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정혁X유인나X임주환, 세상 달콤한 트릭 3차 티저 문정혁, 유인나, 임주환의 달콤한 트릭이 시작된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금손 특집을 선보인다. 위클리 13일 컴백 하이라이트 메들리 공개 오는 13일 컴백을 앞둔 걸그룹 위클리(Weeekly)가 타이틀곡 포함 새 앨범 음원 일부를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펜트하우스 2차 티저 순옥킴의 본격적인 서스펜스 복수극 SBS 펜트하우스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강렬함이 남다른 2차 티저를 공개했다.

댓글 달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